| 장애인 문화예술은 사회변화의 원천이다.
장애인 문화예술은 장애인의 삶의 질을 변화시킨다. 유럽처럼 유엔이 정한 기준에 따라 학교교육 단계에서부터 기초자치단체의 상당수가 방과 후 학교 형식의 문화학교를 운영하게 되면 장애인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능력을 발견해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고교 졸업 이후에도 고교 부설 예술학교를 국가 및 각종 기금에서 지원하는 형태의 발달장애인 예술학교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경우 장애인들도 당당하게 일반 작가들과 대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될 것이다.
2010년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에 자리 잡은 문화학교가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특히 유럽 최초의 발달장애인 예술학교를 만든 구닐라 씨를 만나 그녀로부터 안내 받은 스웨덴의 예술학교, 지역사회의 구도심을 활용한 공방,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전문작가들의 작업실 등에서 받은 인상은 강렬했다. 그들은 자신이 있었고, 당당했다. 40대 자폐성 장애인이 자신이 그린 그림을 새긴 흰 티셔츠를 입고 낯선 나라에서 온 방문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또렷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국제사회의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시아 태평양지역 62개국은 아직까지 유엔이 정한 기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빈곤문제가 현안이기 때문이다. 10월 말부터 11월 2일까지 열리는 인천세계장애대회에서 장애인 문화예술에 대한 공론화가 안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를 중심으로 서울대 주윤정 박사 등이 손을 잡고 한국장애인문화예술연구회를 결성해 장애인문화예술의 앵커시설을 국고를 지원해 만들어야 한다는 이슈를 발달장애인 문화예술 당사자 단체를 중심으로 9월 21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자폐인 사상 처음으로 미국 뉴욕의 유명 갤러리에서 작품을 소장하게 된 사연을 발표한 미 샌프란시스코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아트센터의 톰 디 마리아 디렉터의 발표가 눈길을 끌었다. 또 신문기자 출신이 일본 나라시에 ‘아트센터 하나’를 만들어 경제위기 속에서도 상상력의 힘으로 일본 국민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 40∼50대 발달장애인 화가들이 행복하게 살게 된 사연도 소개되었다. 장애인 문화예술센터가 국가로부터 급여를 받아 어렵게 생활하는 가난한 발달장애인들에게 풍족한 삶을 허용하게 된 이야기는 참석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우리나라에서도 로사이드의 활동이 주목을 받았다.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청년 예술가들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알아 본 전문가들이 발달장애인 작가 군을 만들어 낸 것은 우리나라 예술계에서도 큰 획을 그은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 발달장애인 문화예술은 미국과 일본이 선택적 시대적 흐름이다.
필자는 올해 사회생활 1년차인 자폐성장애 1급 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아들은 2010년부터 무대에서 <죽어도 못 보내>라는 곡을 피아노로 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는 발달장애인 예술가들이 회당 출연료를 1인당 5만 원을 받는 시대를 열었고, 올해는 회당 10만 원을 받는 시대를 열었다. 국고지원을 받아 올해 2차례 실시하게 된 ‘꿈꾸는 사람들의 행복한 문화복지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장애인 공연 시 관객이 없어 겪는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손잡고 지역아동센터와 시설아동에서 문화적으로 소외 받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음악을 선사했다. 이동편의와 간식비는 문화공항을 지향하는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지원했다. 공사는 앞으로도 어린이재단을 통해 지속적인 협력을 약속하고 있어 새로운 콘텐츠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는 2011년 국내 최초의 장애인 문화복지 전문 매거진 제안자이기도 하다. 장애인 문화예술에 대한 연구는 물론 문화예술 현장에 대한 홍보가 미흡한 상황에서 장애인들과 가족들로 구성된 필진들이 올 9월호까지 12차례 36쪽 분량의 잡지를 발간했다. 앱 서비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세계 각국에서 장애인 문화예술에 목말라하는 장애인 부모들에게 정보를 공유하는 성과가 적지 않았다. 동영상도 공개했다. 연 인원 1만 명 이상의 독자들이 앱 서비스를 통해 장애인 문화예술의 세계를 알게 된 것은 ‘꿈꾸는 사람들’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자랑이기도 하다. 필자는 장애 영역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고 하는 발달장애인들이 고교 졸업 이후 사실상 방치돼 퇴행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자식이야기만 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이야기한다. 학교에서는 학교를 졸업해도 취업할 수 있는 교육을 하지 않고 국고를 축내고 있고, 지역사회에서는 이들을 받아주려고 하지 않는다. 대학에서도 상태가 좋은 장애인만 받을 뿐 발달장애인을 받아들이는 학교가 거의 없다. 그래서 부모들이 나선 것이다. 장애자녀에게 어렵게 가르친 음악활동을 중단하는 것도 눈물 나는 일이어서 그 장점을 살려 무대에 설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내 아이의 문제이기도 하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학부모들이 겪고 있는 공통의 문제이다. 영종예술단은 창립 첫해인 지난해에는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7차례 공연을 하면서 풀뿌리 문화단체로서의 체력을 길렀다. 그것을 기반으로 해 올해는 한국현대사의 대표적인 인물 중의 한 명인 죽산 조봉암에 대한 창작 판소리를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 이 작품은 세계최초의 시각장애인 고수 조경곤 씨가 북을 잡아 의미가 더 컸다. 10월 27일 인천국제공항 인근 하늘문화센터에서 인천세계장애대회 축하공연 형식으로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힘든 일도 적지 않다. 인천시교육청에서 영종초등학교에 100명 정원 규모의 특수학교를 만들어 20명 정도는 문화예술을 특화하고 직업교육을 시켜 100% 취업도 시키고 월 120만 원을 받는 직장인으로 길러 내겠다고 다짐을 했으나 일부 학교 교장들과 특수교사들은 시내 한복판에 있는 만월중학교 폐교 부지를 활용해 특수학교를 짓자는 여론을 주도하면서 부모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 그것이다. 말로만 평생교육을 이야기하고 학령기 이후 발달장애인들이 사실상 방치되어 있다. 방치되고 있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교육당국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는 학교교육은 실패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내게 있어 아들은 나침반이다. 어렸을 때 아들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참 힘들었는데, 지금은 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국립 장애인문화예술지원센터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게 된 것도 다른 기자들과는 달리 이 분야를 꾸준히 고민하고 취재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꾸준한 관심이 변화의 원천이다.
필자는 2006년 4월부터 KBS 3라디오 <함께하는 세상 만들기>의 ‘정창교 기자의 차별 없는 세상’에 고정출연해 매주 금요일 오전 9시 25분부터 10여 동안 생방송을 하고 있다. 아들의 이야기도 하고 제가 만난 장애인들의 다양한 이슈를 이야기하는 코너이다. 요즘은 문화복지에 대해 관심을 쏟고 있다. 복권기금을 활용해 국제세미나를 열면서 얻은 것은 미국과 일본의 발달장애인 예술가들의 나이가 40대, 50대라는 점이었다. 중년의 나이에 행복하게 살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도 문화예술을 통해 장애인들이 부모사후에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은 값진 결실이다. 유럽에스캅의 경우 문화예술을 필수적인 삶의 일부분으로 보는 반면 아시아에서는 여전히 빈곤문제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인천에서 열리는 세계장애대회를 계기로 내년부터 향후 10년간 아시아 태평양 지역 장애인들이 문화예술을 통해 행복하게 사는 길을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 일은 장애인 문화예술을 담당하고 있는 당사자 단체들의 목소리를 수렴하는 일부터 시작될 것이다.
[기사 입력 : 2012.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