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2면/자폐인 윤은호, 영국장애인문화예술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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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9-30 19:45 조회85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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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던가
<영국 자폐 당사자들을 만나다> ①
글 사진=윤은호(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초빙교수)
[기자가 참여하고 있는 성인자폐성자조모임 estas 구성원 일부는 소그룹을 구성, 한국장애인재활협회(RI Korea)에서 신한금융그룹의 도움을 받아 매년 진행하고 있는 연수 프로그램인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도전하다’에 도전, 14기 장애청년드림팀으로 선정돼 지난 2018년 8월 9일부터 18일까지 영국 스코틀랜드를 중심으로 자폐성 장애관련 기관, 자폐성 장애 당사자들과 만났다. ]
자폐당사자도 유리공예를? - 英 스코틀랜드 아트 오퍼튜니티(Art Opportunity)
<자폐인 윤은호, 장애인문화예술 현장을 가다> ⑦
[일본 내 장애예술 모임을 방문한 이후, 지난 2018년 신한금융그룹과 RI Korea가 주최한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도전하다〉 연수를 통해 Scottish Autism에서 운영하는 Art Opportunity Center를 방문하게 되었다.]
이번에 방문하게 된 기관들 중 가장 많은 시간과 공간을 들여 방문한 스코티시 어티즘(Scottish Autism)은 자폐당사자를 위해 몇몇 부모들이 1968년에 만든 단체다. 현재는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스코틀랜드 내에 있는 자폐를 가진 사람들이 모든 삶의 여정을 진행할 수 있도록’(to enable people living with autism in Scotland through the whole life journey) 특수학교와 어린이 보호, 성인주간보호 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본부와 특수학교 등 주요 시설은 글래스고와 에딘버러에서 열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앨로아(Alloa)에 있다.
애초에 연수 기관 선정에 가장 큰 도움이 되어 주신 캐트리오나(Catriona) 박사님이 스코티시 어티즘에서도 연구 조언자(adviser)로 일하고 계셨기 때문에 스코티시 어티즘의 기관방문도 부탁드렸고, 그 과정에서 정보를 찾던 중 이 단체에서 Art Opportunity(한국어로 번역하면 예술기회센터)라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캐트리오나 박사님과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해당 공간을 방문해도 될지 요청을 드렸고, 캐트리오나 박사님은 Scottish Autism 측과 대화를 나눈 후 흔쾌히 방문 허가를 내줬다. 그리고 당일 도착하고 나서 New Struan School에서 SA가 하고 있는 활동에 대해 먼저 설명을 들은 우리는 팀을 두 그룹으로 쪼개 두 곳으로 향했다. 드디어 마음에 두고 있던 공간인 아트 오퍼튜니티(Art Opportunity)를 방문하는 순간이었다.
도착한 곳은 스코티시 어티즘 본부 근처에 있는 작아 보이는 2층짜리 건물. 주변에 있는 건물들 사이로 작은 건물이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동안 방문한 장애인문화예술 센터들 중에서 작은 편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단독 건물인데다가 건평도 작지 않다. 지금까지 방문했던 장애인문화예술센터 중에서는 민들레의 집 다음으로 컸다. 인솔하시는 선생님을 따라 센터를 지도하시는 또 다른 선생님을 만나 공간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트 오퍼튜니티는 2층으로 되어 있고, 1층에 주요 작업공간이 위치해 있었지만 2층에도 많은 작업공간이 있었다. 우선 메인 작업장을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봤던 많은 발달장애 전용 예술 공간과 비슷해보였다. 다만, 다른 곳들과 달리 공간에 있는 도구의 수는 더 많아보였다. 중앙에 높게 쌓여 있는 물품 보관대에는 다양한 직류와 함께 ‘쿠션 커버 재질’ ‘티셔츠’ ‘배경 재질’ 등의 라벨이 있어 퀼트 등의 작업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고, 작업대에도 작업 중인 퀼트 작업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중앙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들에는 작은 캔버스 위에 물감 떨어뜨리기 기법을 사용하고 있었고, 작업실 오른쪽에는 아크릴 물감, 모자이크 타일 등 다양한 재질들이 마련되어 있어 이 작업실에서 자폐 당사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미술용 작업만 해도 다양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음으로 이동한 장소가 나를 가장 놀랍게 만든 공간이었다. 인솔하신 선생님이 왼쪽에 있는 열쇠함에서 조심스럽게 열쇠를 꺼내, 문에 열쇠를 여러 번 돌린다. 그러고 나서 열린 문 안쪽에는 두 개의 선반에 유리공예 작품들이 놓여있었고, 안쪽에는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라는 내용이 붙어 있었다. 유리공예와 스테인드글라스? 국내에서는 아마 장애인들에게는 위험하다며 절대 접근을 금지시킬 분야일 텐데, 그런데 작업 선반 위에도, 창문에도 이들의 작품이 가득하다. 그렇다면 이곳은, 실제로 자폐당사자들이 유리 위에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공간이 맞다.
이곳에 있는 유리 작품들을 자세히 살펴봤다. 우선 유리공예의 경우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어보였다. 흰색 유리 위에 특수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법으로 그려진 그림들이 보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이 사용된 것은, 다양한 색상의 작은 비즈들을 유리 위에 놓고, 이를 구성하는 방법이다. 파란색, 빨간색, 흰색 등 다양한 비즈등이 준비되어 있었고, 크기도 작은 것부터 중간 크기, 길쭉한 것까지 다양했다. 자폐당사자의 경우 소근육운동에 제한이 있고, 곡선을 사용하는 그림을 그리는 능력에 한계가 있다. 반면 비즈를 사용한다면 소근육운동 촉진에도 도움이 되고,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돼 보다 창작활동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유리를 직접 자르거나 유리 위에 투명 비즈를 놓은 것들, 긴 비즈들을 겹쳐 표현한 작품들까지 다양한 기법을 사용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스테인드글라스였다. 작은 것에서부터 큰 크기의 정형화된 유리조각까지, 작업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다양하게 만드는 작품들을 보고 나니, 이곳에서 자폐당사자들이 만들고 있는 작품들이 너무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유리의 소재 특성 상, 이곳에서 유리공예를 하고 있는 자폐당사자들이 쉽게 찔리거나 상처를 입지 않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질문을 던져보니 유리공예를 시작하기 이전에 안전교육을 반드시 하고, 다양한 안전보호구를 착용하고 나서 공예에 임한다고 한다. 또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특히 눈에 유리조각 등이 튈 경우에 대비해 입구에는 눈을 빠르게 씻을 수 있는 세정제 등이 마련돼 있었다.
작업실에서 1차로 작업을 마친 유리작품들은 작업실과 분리된 전기고로에서 굽기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되면 유리와 잉크, 비즈가 완전히 밀착해 하나의 유리 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곡선으로 유리를 굽혀서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되어 있다.
2층에 올라갔다. 우리가 방문한 시간이 점심시간에 가까웠던지라 작업 중이던 자폐 당사자들이 위층에 모여 있었다. 한쪽에서는 점심을 먹으면서 쉬고 있었고, 한쪽에는 몇몇 당사자들이 펄러 비즈(Pealer beads)를 이용해 입체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펄러비즈의 경우 동일한 간격의 플라스틱 판에 작은 구멍들이 뚫린 원기둥 플라스틱을 도트처럼 배치하고, 나중에 이를 다리미로 녹여 붙이는 핸드메이드 예술인데, 이런 작업들을 여기서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게 신기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공간은 컴퓨터와 함께 탁자와 의자가 놓인 공간이었다. 이곳에서는 컴퓨터 아트 등을 교육하며, 탁자는 청각 민감성이 심해 높은 집중력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따로 놓여져 있다고 한다. 다양한 미술 작업들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이 인상깊었다.
그럼 이렇게 생산된 작품들은 어디에 쓰일까. 그 질문은 점심을 먹기로 한 메이커스(Makers)에서 풀렸다. 메이커스는 자폐당사자의 자활을 목표로 올해 2월, 앨로아 중심가에 스코티시 어티즘이 만든 공간이다. ‘카페 및 커뮤니티 허브’라는 수식어가 말해주듯, 자폐당사자들이 음식 및 커피 제조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하는 이 공간의 개장식에는 스코틀랜드 정신보건장관이 직접 방문해 개업을 축하하기도 했다. 이 공간의 한편에는 아트 오퍼튜니티에서 제작된 작품들이 ‘숍 앤 갤러리’라는 이름으로 모여 있다. 우리나라의 오티스타처럼 그들의 실제로 일반인들에게 판매되고 있던 것이다. 물론 이외에도 별도의 전시회를 열어 작품을 판매한다고 들었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 작품을 만든 자폐성 당사자가 해당 작품에 대한 판매대금을 지불받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판매된 작품들은 모두 기관의 예산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폐당사자들에게 줄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영국에서는 정책적으로 모든 장애인들에게 생활에 충분한 보조금이 지불된다. 그래서 아트 오퍼튜니티 센터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돈이 없어서, 굳이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간을 보내면서 창작활동을 진행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는 것이라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이곳을 방문하고 나서, ‘자폐당사자가 할 수 있는 예술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라는 질문을 되새겨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자폐당사자는 대부분 ‘도전적 행동’을 쉽게 저지르는 존재로 여겨진다. 그런데 그들과 다르지 않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아트 오퍼튜니티에서는 자폐당사자들에게 어려워 보이는 작업들을 척척 해내고 있었다.
이쯤 되면 자폐당사자들이 할 수 있는 예술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는 것 같다. 자폐당사자들은 유리공예도, 도예도, 조각도, 그림도 다 그릴 수 있다. 물론 행위예술이나 다른 예술, 웹컬처 창작활동도 다 할 수 있다. 물론 충분한 교육이 있다면 미디어아트도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것을 하지 못한다는 선입견이, 자폐당사자들의 다양한 창작활동의 가능성을 막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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