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면/어느 날, 앨범 속 사진이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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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05-07 19:18 조회84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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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앨범 속 사진이 말을 걸었다
김정은(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박사수료)
글로, 악기로, 목소리로, 연기로...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제 생각을 전달합니다.
사진(Photo)과 목소리(Voice)의 영어 단어를 합친 ‘포토보이스(Photovoice)’는 사진을 통해 자기 삶의 경험과 생각을 전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조금 더 학문적으로 정의하자면, ‘포토보이스(Photovoice)’는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삶을 그들이 촬영한 사진과 사진에 담긴 내러티브를 통해 이해하려고 하는데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되죠. 풀어 말하면 사회 내 부정적인 이미지나 편견 탓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집단이나 개인이 자신의 경험을 당사자의 목소리(voice)로 드러낼 수 있게 하는 연구 방법에 근거하고 있습니다(Novak, 2010).
포토보이스는 연구 참여자가 직접 주제를 정하고 주제에 따른 사진을 촬영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의미를 공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여자들 스스로 치유의 과정을 함께 주도한다는 점에서 ‘참여자 주도형 연구’로 불립니다. 또 연구 참여자와 연구자가 협력을 통해 연구자료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참여자는 연구에 단순히 참여만 하는 존재가 아닌 공동연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연구 참여자들이 자신들의 삶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이고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도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Duffy, 2011). 이러한 이유로 포토보이스는 지난 20여 년간 여러 사회문제를 가진 집단을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적용되어 왔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암 생존자, 뇌졸중 생존자, 치매 환자, 노숙인, 이민자, 성매매 여성같이 소수이거나 취약집단의 억압된 목소리를 주로 드러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지적장애인(전정식·김경미·유동철·김동기·신유리, 2013), 다문화 이주민 청소년(이재희·김기현·라미영, 2014), 유학생(김경오, 2013), 학교사회복지사(라미영·이재희·Keren·방실, 2013), 정신장애인(김민아·이선혜·서진환·송영매·김정은, 2016) 등을 대상으로 이들의 삶과 사회문제를 이해하는 연구들이 진행된 바 있습니다.
미술이나 음악, 무용같이 사진을 비롯한 시각적·예술적 매체가 개인의 주관적인 삶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라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죠. 거기에 요즘에는 많은 사람이 카메라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진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기 한결 쉬워졌습니다. 또, 아무래도 사진이라는 시각적 매체를 활용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언어표현이 어려운 사람들도 보다 쉽게 제 생각과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저는 정신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포토보이스 연구 결과가 도출된 이후 발달장애인, 발달장애아를 둔 부모, 장애 가족 구성원을 둔 가족 등 다양한 분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포토보이스(Photovoice)는 보통 이런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먼저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이용자들을 모집합니다. 이용자가 모집되면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죠. 이것이 어떤 프로그램인지, 앞으로 몇 회기 동안 무엇을 하게 되는지…. 아, 저작권이나 초상권 등에 관한 교육도 진행됩니다. 아무래도 사진이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인데요. 또 첫날 앞으로의 주제를 정하기도 합니다. 물론, 사전 설문지를 통해 우울감이나 삶의 질 등도 측정하죠.
주제가 정해지면 모임 전까지 참여자들은 주제에 맞는 사진을 3~4장 저에게 전송합니다. 제목과 함께요. 그리고 저는 그 사진을 내려받아 모든 참여자가 모임에서 함께 볼 수 있게 준비합니다. 모임 당일, 제가 주제를 설명하고 주제가 어땠는지, 사진을 촬영하기에 또는 준비하기에 어떤 점이 어려웠는지 등을 서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참여자들이 전송해 준 사진을 보고, 그 사진에 대한 설명을 듣죠. ‘가족’, ‘사랑’이라는 주제는 단골인데요. 사진을 통해 힘들었던 지난날을 누군가가 이야기하면,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또 저를 포함한 프로그램 스태프들도 모두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나도 그랬어요”, “그래도 이겨내 대단해요”. 서로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고 칭찬해 주고. 또, 현재 그 힘듦을 겪고 있는 사람에겐 조언과 응원을 해 주고... 이런 과정을 겪으며 조금씩 참여자들의 관계도 마음도 단단해집니다.
과정을 나열하니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처음에는 주제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장벽은 내면의 벽. 이해는 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익숙하지도 않을뿐더러 쉬운 일도 아닐 테니까요. 그래서 프로그램 진행 초반에는 제가 참여자들의 이름을 한 번씩 부르며 말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마디도 하지 않고 돌아가는 참여자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한 번 두 번 모임이 지속되면 제가 일일이 지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말을 하는, 즉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점입니다. 사진을 보내기 어려워했던 분도 나중엔 여러 장 사진을 보내고 함께 하는 참여자들에게 자신의 사진 제목을 정해달라고 부탁도 하고요. 이것이 치유겠지요. 그래서인지 프로그램이 진행된 이후, 첫 번째 모임때 했던 우울감이나 스트레스, 삶의 질 척도를 다시 측정하면 놀라우리만큼 긍정적 효과가 나타난 것이 확인됩니다. 몇 주간 프로그램을 진행한 강사가 측은해 사후 검사에 좋은 결과를 주시나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지만 강사인 저는 압니다. 이분들의 표정에서부터 차이가 나거든요.
몇 번의 포토보이스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 가운데 기억나는 프로그램이 몇 건 있습니다. 하나는 발달장애인 및 가족과 함께 한 프로그램이었는데요. 여러 효과를 접목시키기 위해 인천의 곳곳을 다니며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사전에 장소와 주제를 정하고 그곳을 탐방한 뒤 각자 찍은 사진을 다음 주에 모여 이야기했는데요. 같은 곳을 다녀왔는데도 사진이 얼마나 다양한지. 그만큼 이야기도 풍성했습니다. 추억은 덤이었고요. 또 하나는 지난해 장애 가족을 둔 구성원들과 진행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특별히 기억나는 건, 나중에 온라인(Zoom)으로 참여자들과 북콘서트를 진행했기 때문인데요. 그동안 다뤘던 주제별 사진들을 앨범식으로 만들어 그 사진들을 보며 zoom 참여자들에게 사진의 의미를 전달했습니다. 처음엔 자신의 얼굴이 나가는 것을 꺼렸던 참여자분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당당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그분들이 그러셨어요. “이런 프로그램이 계속돼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또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른 장애 가족 구성원에게도 알려 주고 싶고 같이 응원하며 이겨내고 싶다”고요. 그래서 저는 올해도 이분들과 포토보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포토보이스(Photovoice)는 왕자의 키스로 잠에서 깨어난 공주처럼 휴대전화 속 잠자는 사진들을 깨워줍니다. 그리고 그 사진에 삶과 생각을 실어줍니다. 또 주제에 맞는 사진을 찾기 위해 앨범을 뒤지다 보면 나의 과거와 꿈과 추억을 다시금 맞닥뜨리게 되죠. 그러면서 씨익~ 짓게 되는 미소. 이보다 더 가성비 좋은 치유 프로그램이 또 있을까요.
지난해 한 참여자의 사진으로 포토보이스 프로그램 소개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참여자 김OO님이 촬영하신 사진의 제목은 <과부하>입니다(사진 제공 동의받았음). 이때의 주제는 ‘나’였고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다 눈에 들어온 전선이 현재 자신의 처지와 같다고 느껴져 사진을 찍으셨다고 합니다. 포토보이스가 어떤 프로그램인지 한 번에 이해되시죠? 또 다른 사진은 정OO님이 ‘여행’이라는 주제에 보내주신 사진입니다(사진 제공 동의받았음). <인생이라는 여행중>이라는 제목인데요. 앞으로 어디로 갈지 알지 못하지만 내 인생 앞에 펼쳐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내 지금의 삶이 여행같다는 설명을 덧붙여 주셨습니다.
사진설명
1. 과부하(김ㅇㅇ님)
2. 인상이라는 여행중(정ㅇㅇ님)
3. 포토보이스1. 김정은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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